• 2020. 3. 11.

    by. 수수한.

     

    미용실에 가지 않고 혼자 머리를 자르고 단순하게 다듬어보다.


    나는 반곱슬에 꽤 굵고 숱이 많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갔던 많은 미용실에서 항상 손님 머리는 매직해야머리는 매직을 해야 뭘 해도 단정해 보인다는 말이 빠진 적이 없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미용실까지 왔는데 한 번쯤 하고 가지 싶어서가자 싶어서 커트하려다 꼭 매직까지 하고 가고는 했었다.


    그렇게 이곳저곳 다니며 여러 미용실을 전전하며 시간이 흘렀고 귀찮아진 나는 6개월이 넘도록 그저 질끈 묶은 머리로 생활하며 내버려 둬 버렸다. 그러다 주변 사람들의 미용실은 왜 안 가냐며 내가 아는 곳이 있다며 알려주는 말에 마음에 뜨끔했는지 부지런히 움직이며부지런을 떨며 미용실에 다시 가보기로 했다.
    지인이 예약해준 미용실은 체인점이 여러 개인 크고 넓은 미용실이었다. 보관함에 물건을 넣고 얼떨떨하게 직원분의 안내대로 의자에 앉자 원장 미용사분이 오셔서 내 머리를 진단하기 시작했다.

    지인께서 매직해달라고지인께서 매직을 해달라고 예약을 해주셔서 딱히 내가 설명할 부분이 많지 않아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도 잠시.

     

    나는 곧 약간 찜찜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고 숱이 많네요. 왜 미용실은 안 오셨어요. 이거 너희 고생 좀 하겠는데. 우선 커트는 매직하고 다듬을게요.'라며 웃는 얼굴로 내 머리칼을 훑으며 주르륵 얘기하다가 직원 미용사분에게 이런저런 해라해두고이러저러 해라 해두고 가버리셨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도 내 머리가 좀 굵고 많아서 그러려니 하고 매직 약에 적셔지는 내 머리칼과 둥근 기계들을 멀뚱히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찜찜함의 시작은 머리를 감을 때였다. 어린 직원분은 내 머리를 감는 게 꽤 고되었던지 손끝과 손톱에 두피가 자꾸 긁혔다.

    '제가 숱이 많아서 힘드시죠. 죄송해요.'라고 넌지시 던졌던 말은 '네?! 아뇨.'라며 퉁명스럽게 돌아왔고
    두피는 여전히 얼얼하게 아파졌다. 그때까진 미안한 마음에 그저 그럴 수도 있냐고 하며있지 하며 넘어갔다.
    하지만 머리를 감고 매직을 시작하자 찜찜했던 마음이 묘한 불쾌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머리숱이 많다 보니 처음엔 한 명이었던 미용사분이 결국 두 사람으로 늘었고
    양쪽에서 이리저리 매직기로 내 머리를 펴는 와중에 머리가 양쪽으로 자주 흔들리다 보니 두피에 열판이 자꾸 닿았다.
    하지만 점점 피곤해 보이는 미용사분들 얼굴에 맘이 미안해서 뜨겁다고 한두 번 얘기하고는 말았고...
    '아, 네'하곤 돌아오는 대답 외에는 바뀌는 것은 없었다.

    잠깐 뜨거운 것보다도 더 큰 불쾌함은 과연 내 머리카락이 얇고 가늘고 섬세했다면 과연 이런 손길로 머리를 다듬어줬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물론 머릿결에 따라 각자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원장 미용사분은 매직 시술 내내 직원에게 지시를 내리고 매직 상태를 흘깃 보러 오는 것이 다였고 직원 미용사분들은 꼭 마네킹에 실습하듯이 내 머리를 이리저리 힘을 주어 최대한 빠른 손길로 머리칼을 펴내려 갔다.
    결국 3시간에 걸친 매직이 끝나고 나서 20분여의 커트를 할 때만 원장 미용사분이 내 머리를 살펴봐 주었고,
    그제야 매직하는 동안 내 앞에 보이던 화사한 여성 손님을 대하듯 나에게 웃으며 머리에 관해 물었다.


    아무리 내가 직접 돈을 내는 주체가 아니고 다른 고객이 값을 지불하는 형태였다고는 해도 공짜로 받는 미용도 아니고
    내가 매직 시술을 실습받는 입장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찜찜하고 불쾌할 수가.
    거기다 이렇게 힘들게 매직을 해놓고 한 달 정도가 지나면 다시 뿌리 매직을 해야 한다니!
    이곳에 오는 것만 해도 40분이나 걸리는데 뿌리 매직이라도 1시간여를 더 앉아있으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에도 머리를 하니 예쁘다며 다시 미용실 갈 때 얘기하라는 지인의 마음을 생각해...한 번 더 갔었다.

    그러고는 나는 미용실에서 하는 매직과 파마에 질려버렸다. 나는 화장기 없는 내 얼굴과 무난한 옷차림의 내 모습에

    평소 아무런 불만도 없었지만, 미용실이라는 장소와 그곳의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친절하고 좋은 미용사분들을 만나 기쁘고 즐거웠던 기억이 내게도 있기에 다시 그런 곳을 찾고 싶어
    몇 년 동안 헤매 보았지만 더 이상 그러기엔 돈과 시간이 너무나 많이 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번 매직이나 미용실에 질리고 나니 이 시간과 비용이 과연 내게 꼭 필요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격식 없는 복장 가능한 일을 하니 꼭 말끔한 비즈니스 복장을 할 필요가 없었고 집 밖보다는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더 길다.
    그런데 이 매직은 도대체 누구 좋아하라고 하는 건가 싶어 그날로 주방 가위를 들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인터넷과 유튜브에서 본 여러 가지 셀프 커트 방법을 참고해서 조심조심 자르다가 한 움큼씩 길이만 맞춰 숭덩숭덩 잘라나가기를 40분여.
    전체적인 길이만 얼추 맞춰놓고 마무리로 머리끝 쪽만 가위를 세워 조금씩 다듬고 길이를 맞춰봤다.
    물론 팔도 아프고 뒷머리를 확인하느라 목도 저리긴 했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냥 미용실에서 층 내지 않고 썩둑 잘라낸 듯한 그런 중단발이었지만 어차피 묶을 거니 별 부담 없이 길이만 맞춰 잘랐다.

     

    의외로 속 시원하고 묶으니 별 차이도 없어서 슬그머니 뿌듯한 마음이 샘솟았다.
    그리고 솔직한 마음으론 괜히 눈치 보이지 않아 속은 편했다.

    그렇게 나는 2년째 아직도 내 머리를 혼자 자르고 다듬는다.
    어차피 집에선 누구 보여줄 것도 아니고 외출할 땐 깔끔하게 묶고 앞머리 정도만 드라이로 정돈하고 나간다.
    물론 복장을 갖추어야 할 때가 생기면 미용실에 가야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매번 분기마다 나갈 매직 비용을 걱정할 필요도,
    왠지 눈치를 볼 필요도 없어졌다. 단지 미용가위나 하나 장만했을 뿐이다.

    머리가 길어 때가 되면 그저 저녁에 가위를 들고 사각사각 다듬고 머리를 감는다.
    스스로 해야 하니 과정은 조금 불편하지만 내 마음은 편안하고 단순하다.
    컬이나 볼륨매직처럼 예쁘고 화려하진 않아도 내 마음만큼은 편하니 오히려 즐겁기도 하다.
    그리고 가끔 머리를 자른 다음 날은 커트 비용으로 맛있는 커피와 케이크를 한 조각 사서 내 자신에게 주기도 한다.
    그 작고 충실한 포상이 왠지 얼마나 기쁘던지 요즘은 스스로 머리를 자르는 날이 기다려진다.


    스스로 머리를 자르다 보니
    아무리 좋고 화려한 것이라도 그걸 갖기 위해 내 마음이 불편하다면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개인적으로 앞으로 조금 더 스스로 머리를 자를 수 있는 일상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